7대 종단 지도자들, 3박4일간 유교 성지 중국 순례
(취푸·타이안=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종교 화합은 종교 간 이해에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모르는 데서 오해가 생기고 종교 갈등이 생기는 거죠."(최근덕 성균관장)
"'백천입해 동일함미(百川入海 同一鹹味)'라는 말이 있습니다. 100개의 골짜기 물이 바다에 들어가면 짠맛은 결국 똑같다는 뜻이죠. 각 종교가 믿는 성현의 말씀도 같은 맛이 아닐까요?"(자승 스님)
"우리가 함께 더 협동하면서 한국 사회의 정신문화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김희중 대주교)
국내 7대 종단 지도자들이 이웃종교 체험의 일환으로 3박4일간 중국을 찾았다.
2010년 로마-이스라엘과 작년 캄보디아에 이은 세 번째 순례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인 대한불교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과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천도교 임운길 교령,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민족종교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 등이 함께했다.
이들이 지난 5일 방문한 곳은 유교의 본산이자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 지금은 인구 10만의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춘추시대 노나라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고 2천200년간 유교의 발생지로 위세를 떨친 곳이다.
먼저 학술 연구·교류와 공자 문물 수집·보관을 담당하는 공자연구원을 둘러본 순례단은 이어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삼공(三孔)'으로 등록된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을 차례로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당으로 알려진 공묘는 중국 역대 황제들이 앞다퉈 증축을 거듭하면서 현재 면적 2만㎡의 넓은 사당이 됐다.
베이징(北京) 자금성의 태화전에 비견되는 공묘의 본전 대성전(大成殿)은 용의 문양을 기둥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청나라 강희제가 직접 썼다는 '만세사표(萬世師表)'를 비롯한 역대 황제들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어 공자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진시황 시절과 문화대혁명 당시 공자는 '척결 대상'이었다. 공자의 9대손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피해 벽에 숨겨둔 경전이 발견됐던 '노벽(魯壁)'과 문화대혁명 때 파괴된 비석을 다시 세운 흔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최근덕 관장은 휴식시간을 이용해 1988년 취푸 방문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 중국을 방문한 국내 7대 종단 지도자들
- (베이징=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이웃종교 체험의 일환으로 중국을 방문한 국내 7대 종단 지도자들. 이들은 4일(현지시간) 고대 중국 최고의 학당 국자감과 공묘을 둘러보고 유생들이 시경을 읽고 노래하는 내용의 '대성예악' 공연을 관람했다. 2012.10.7 hanajjang@yna.co.kr
이를 가만히 듣던 한양원 회장이 "지금 공자님에게 하소연을 하는거냐 원망을 하는거냐"라고 예리하게 지적(?)해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잠시 숨을 돌린 순례단의 발길이 이어진 곳은 공자의 후손이 살면서 행정을 봤던 공부. 당시의 세간살이와 거실, 침실, 부엌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이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외채와 안채를 가르는 벽에 그려진 상상 속의 동물 '탐(貪)'의 그림이었다. 용의 머리에 소의 발굽을 하고 온갖 보물을 쥐고 있으면서도 태양을 먹기 위해 욕심을 내는 동물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한 벽화다.
최 관장은 "탐욕스러움을 경계하는 것으로 '안빈낙도' 사상을 뜻한다"며 "주로 부녀자들에게 그림을 보여줘서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인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욕심을 좋게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병폐가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니겠느냐. 옛날에도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며 이웃종교에 공감을 표시했다.
순례단은 면적 200만㎡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묘지로, 공자와 10만 명이 넘는 공자 후손들의 묘지인 공림도 둘러봤다.
이날 삼공 곳곳은 공자의 사상을 기리는 현지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공부에만 이날 하루 동안 3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은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 정부가 21세기 들어 공자와 유가 사상을 고취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 관장은 "공자는 인류 보편의 윤리 도덕을 설법했다"며 "공산당이 아무리 비판해도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이 세계적으로 도약하려면 공자밖에 없다"고 밝혔다.
- 중국을 방문한 국내 7대 종단 지도자들
- (베이징=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이웃종교 체험의 일환으로 중국을 방문한 국내 7대 종단 지도자들. 이들은 4일(현지시간) 고대 중국 최고의 학당 국자감과 공묘을 둘러봤다. 2012.10.7 hanajjang@yna.co.kr
임운길 교령은 "공자가 종교적인 의식보다 생활 속에서 뜻을 펴는 데 주력해 생활 속에서 인의예지가 퍼져나갔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앞서 베이징(北京)에 위치한 고대 중국 최고의 학당 국자감과 공묘를 둘러보고 유생들이 시경을 읽고 노래하는 내용의 '대성예악' 공연도 관람했다.
7일에는 중국 5악(五岳)의 하나로 역대 왕조의 황제 72명이 하늘과 땅에 치적을 보고하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을 거행하던 타이안(泰安) 태산(泰山)에 함께 올랐다.
이웃종교 체험을 마친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 간 이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자승 스님은 "다종교 다문화 사회에서 화합을 이루는 것은 서로의 교리를 존중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라며 "종교 간 상생과 화합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이웃종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존중하고 서로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만 흐르는 상황에서 경제 질서 이외에 정신문화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불교 김대선 문화사회부장은 "궁극적으로 성자들이 일깨워준 것은 정성과 공경과 믿음"이라며 "상호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사회가 더 평화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순례는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이뤄졌으며 7대 종단 수장단 중 기독교 홍재철 한기총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원불교 교정원장은 종단 사정으로 각각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