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7년, 25세에 갈멜 신부로 서품된 요한은 아빌라의 데레사를 만나
그녀와 마찬가지로 갈멜의 초창기 규칙을 지키기로 허원했다.
데레사의 동료로서 그리고 자기 자신의 뜻으로 요한은 개혁 사업에 뛰어들어
개혁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점점 심해지는 반대와 오해, 박해 그리고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예수의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서-어둡고 축축하고 비좁은 감방에서
오직 하느님하고만 몇 달씩 앉아 있으면서 십자가를 뼈저리게 깨닫기에 이른다.
이 무슨 모순인가!
죽음과도 같은 감옥에서 요한은 시를 읊으면서 생명에로 나아 갔다.
세상에는 수많은 신비가가 있고 수많은 시인이 있지만 요한은 감옥이라는
자신의 십자가 안에서 영적 아가로,
하느님과의 신비한 일치에 따르는 황홀 상태를 표현하는
신비 시인으로서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고뇌가 황홀로 인도하듯이 요한은 갈멜 산으로 올라갔다.
한사람의 인간이며 그리스도인이고 갈멜 수도회의 신부로서
그는 자기 자신안에서 정화되는 승화를 체험했다.
그는 영적 지도자로서 다른 사람 안에서도 그것을 묘사하고 분석했다.
그의 산문 저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대가,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는 좁은 길,
다시 말해서 엄격한 규율과 자아의 포기,정화를 강조하는 데 뛰어나다.
요한은 단호하고도 힘있게 복음의 모순을 강조한다.
즉 십자가는 부활로 인도하고,고통은 황홀로,어둠은 빛으로,포기는 소유로,
자기부정은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너희가 만약 너희의 생명을 구하고자 한다면 너희는 그것을 잃을 것이다."
요한은 참으로 ’십자가의’ 사람이었다.
그는 짧지만 충만한 인생을 살다가 49세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