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일: 5월 14일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
San Michele Garicoits
Bassi Pirenei, Francia,15 aprile 1797
- Betharram, Francia, 14 maggio 1863
성 미카엘은 피레네 산중의 작은 촌락에서 가난한 어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산중생활이 대부분인 그는 여늬 아이들과 다름없이 양을 치는 평범한 목동이었지만,
가끔씩 자기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곤 하였다.
그러나 부모들은 "돈이 없다"는 식으로만 말했지만, 그의 할머니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쌩-팔레스본당 신부께 찾아가서 손자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그 본당신부의 주선으로 그 지방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부모는 학비를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본당이나 주교관에서 일해야만 하였다.
이 학생은 시골 목동이지만 매우 현명하고 또 건강했다.
더우기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세로 노동과 공부를 했던 결과,
"우리의 알로이시오 곤자가"란 별명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축일:6월21일,게시판1232번,1830번
Saint Aloysius Gonzaga (Jesuit):1568-1591년.예수회.가톨릭 청소년들의 수호성인)
이리하여 그는 1823년 12월에 사제로 서품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캄보의 보좌 신부로 출발한 그의 사제생활은 처음부터 얌센니즘과 싸워야 했으나,
예수성심께 대한 지극한 사랑과 자주 성체를 모시는 관습을 보급하여 극복하려고 애썼다.
그다음 부임지는 베타람 소신학교였다.
여기서 경험을 얻은 가리고이트 신부는 다른 2명의 사제와 함께 독단적인 봉사를 꿈꾸게 된 것이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제 양성 계획을 구체화 시킬 심산으로
3명의 동료와 함께 공동체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 그가 뚤루즈로 가서 예수회원인 러 블랑신부를 만났는데,
그 신부는 가리고이트 신부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격려까지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성 이냐시오의 자녀들과 같은 규칙에 근거하는 회헌을 만들고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것이 소위 "베타람의 성심 사제회"이다.
이 사제회는 그가 죽은지 14년 뒤에 성좌의 인가를 받았다.
출처 : 사랑의 향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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