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스크랩] 10월 15일 (월) 묵상글

"/" 2012. 10. 15. 22:03

 


 

 

축일 : 10월 15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스페인 카스틸레의 아빌라에서 태어난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녀들로부터 교육받았으나 건강 때문에 1532년에

수녀원을 떠나야 했다.
그후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갈망해오던 그녀는 1536년에 아빌라에서

가르멜수녀가 되어, 다음 해에 서약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1538년에 수녀원을 떠났다가 1540년에 다시 들어가는등

건강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

그녀는 1555년과 1556년 사이에 최초로 환시를 보았고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는데, 성 베드로 알칸타라의 영적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의 지도로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개혁 가르멜 수도원 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스페인 전역에서 가르멜의 개혁을 위해 노력 하였으나, 난관

또한 많았다

1575년의 총회는 그녀의 개혁 그룹을 제한하였다.

1580년까지 가르멜 내부의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투쟁은 격심하였으나

불굴의 용기로 이를 이겨 나갔다

이윽고, 그레고리오 13세는 맨발의 개혁파를 독립 관구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데레사는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지었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자서전"(1565), "완덕의 길"(1573), "영혼의 성"(1577) 등이 특히 유명하다.

 

크리스챤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분인 성녀 데레사는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었으며, 매력적이며 깊은 영성을 지녔으므로,

차원높은 관상생활과 더불어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이다.

 

그녀는 스페인의 알바 데 토르메에서 선종하였고,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하여 1622년에 시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교회의 여성으로는 최초로 교회박사로 선언되는 영광을 얻었다.

 

데레사는 고통(육체적인 병,개혁에 대한 반대,기도의 어려움등) 의 지속적인

현존과 그 가치를 잘 알았고 그 고통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으며,

심지어는 주님께 고통이든 죽음이든 주십사고 청하며 고통을 바라기까지 했다.

 

생애의 마지막에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오! 나의 주여, 당신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통중에 보상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진실된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만일 그 가치를 이해한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아무것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니

인내는 모든 것을 얻게 합니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이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오로지 하느님으로 충분합니다.

 

 

 

 
 

찬미예수님!

 

오늘의 묵
 
 
 
 
연중 28주 월요일- 영적 장애인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 묵상

 ..

 

영적 장애인.

 

어제는 서울에 올라가 어느 형제회 피정을 동반하였습니다.

 

끝내고 서울역까지 차를 태워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강의 때문에 많이 찔렸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찌르려 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니

 

당신이 찔렸다고 말씀하십니다.

. 

 

그 말씀 덕분에 내려오는 내내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했습니다.

 

분명 똑같은 저의 강의를 듣고 찔린 분이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찔리지 않은 분과 찔린 분 중에 누가 행복할까요?

 

당장은 찔리지 않은 분이 행복할 것입니다.

 

아니, 찔릴 때마다 상처만 받으시는 분보다는

아예 찔리지 않는 분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은 찔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가르치고

 

찔리지 않는 사람은 영적 장애인이기에 불행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요나의 설교에 마음이 찔려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이

 

아예 귀를 막고 듣지도 않고 꿈적도 않는

 

이 세대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5시 기차를 탔습니다.

 

옆에 제 나이 또래의 자매가 앉게 되었는데 짐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짐을 선반에 올려드렸는데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못 생겨서 그런가 곧 잠이 들어버립니다.

 

그에게 저는 없는 존재입니다.

 

기차가 떠나고 곧 한강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강을 지날 때마다 한강의 그 도도함과 충만을 기다렸다 보는데

 

어떤 사람은 그 강을 무심히 보고, 어떤 사람은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30분이 지나니 해가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황금 빛 노을이 황금 들판과 어울려 황홀했습니다.

 

그런데 기차 안 아무도 그 노을을 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노을의 은은한 빛도 싫은지 커튼으로 가렸습니다.

 

감각이 통하지 않는 것,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막아버려 아무 내적 반응이 없는 것,

 

어쩌면 이것이 장애 중에 큰 장애일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장애인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영적인 얘기에는 아예 무감각, 무반응인 존재지요.

 

자신의 돌 같은 무감각과 무반응을 해제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는 그 무감각과 무반응을 깰 표징을 보이라고 요구합니다.

 

엄청난 기적이 아니면

 

자신의 그 단단한 영적 무감각은 깨지지 않을 거라고 고백하는 셈인데

 

주님은 요나의 표징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요나처럼

 

죽었던 영적 감각이 다 살아나는 것이 어쩌면 회개이고,

 

그럴 때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하느님의 표징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돌아온 노둣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