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교황 프란치스코 |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주일 전례 한가운데서 우리는 가장 든든한 진리들 가운데 하나, 곧 주님의 섭리를 보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것을 부드러움으로 가득 찬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이미지로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 49,15)
이 이미지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잊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이름과 별명까지도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잊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인가요.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이렇게 초대한 것은 마태오 복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마태 6,26.28-29)
그러나 불안정한 상태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 혹은 자신의 존엄함이 침해받는 빈곤 속에서 사는 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착각이 아니라면 추상적인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이 두 주인, 곧 하느님과 재물(부)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을 환기시켜 줍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축재하려 하는 한, 그곳에는 절대로 정의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축재하려 하는 한, 정의는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대신에, 우리가 자신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김으로써, 그리고 그분의 나라를 함께 찾음으로써, 그 어느 누구라도 존엄함을 갖고 살 수 있는 필요한 수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소유를 위한 갈망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은 소유를 위한 갈망으로 가득 찬 마음이며, 그 마음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주 부자들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지상의 재물에서 자기들의 안전을 찾는 중대한 위험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안전은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재물에 사로잡힌 마음에는 신앙이 자리할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재물과 관련되어 있을 뿐, 신앙을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하느님께 합당한 자리를, 그것도 으뜸의 자리를 마련해드린다면, 그의 사랑은 자신의 부까지도 나누는 사랑으로 발전하고, 그 부를 연대와 발전의 계획에 기여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역사에서, 최근에도 많은 사례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느님의 섭리는 다른 사람에게 기여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통해 나타납니다. 만일 우리 각자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기여하기 위해 재물을 축적한다면, 그런 경우로, 즉 그 같은 연대의 활동으로 하느님의 섭리는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자신만을 위해 축재한다면, 그를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
 |
|
▲ 지난 2일,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교황청 유튜브 갈무리 youtube.com/vatican) |
누구도 재물을 갖고 그분께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누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다른 이와 나눈 그것만 갖고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길은 어느 정도 약간은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경제위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과 관련해서 볼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길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 길은 올바른 가치들로 우리를 되돌릴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마태 6,25)
빵, 물, 옷, 집, 일자리, 건강에 있어서 아무도 부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모든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형제라는 것을, 또 우리가 그에 합당하게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이 점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밝혔습니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형제애라는 것을 말입니다. 형제애야말로 함께 가고, 서로 나누는 길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의 빛으로, 하느님 섭리의 어머니이신 동정녀 마리아께 간청합시다. 마리아께 우리의 삶과 교회와 인류의 여정을 맡깁니다. 특히 그녀의 전구를 청합시다. 우리 모두가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게 해달라고, 가장 궁핍한 형제들의 처지를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삼종기도 후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미묘한 정국에 놓인 우크라이나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주기를 청합니다. 우크라이나 시민 모두가 서로의 오해를 극복하고 나라의 미래를 함께 건설하고자 노력하기를 희망하면서도, 국제 공동체가 대화와 협정을 위한 모든 노력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주기를 호소합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사순 시기, 하느님 백성이 부활을 향해 떠나는 여정, 회개의 여정, 기도와 단식과 자비를 무기로 악에 대항해서 싸우는 여정에 들어섭니다. 인류는 정의, 화해, 평화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인류는 온 마음을 다해 그것들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돌아감으로써만 그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하느님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정신으로, 그리고 이 시간, 폭력적 갈등과 빈곤으로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의 정신으로 사순 시기를 맞이합시다.
기쁜 주일 지내시고,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번역 :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신정동성당 주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