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이벽의 삶과 믿음' 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서른셋의 짧은 생을 산 이벽(1754∼1785·세례자 요한)은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천주교가 추진 중인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의 시복시성(諡福諡聖·성인 또는 그 전 단계인 복자로 추대하는 일) 대상에도 대표로 올라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오는 22일 오후 2시 서울 가톨릭회관에서 '이벽의 삶과 믿음'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그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한국 최초의 세례식이 열린 그의 집의 정확한 위치와 한국 천주교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자리다.
발제를 맡은 김정숙 영남대(국사학) 교수는 미리 공개된 자료집에서 "이벽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조선인 신자 공동체를 일궈낸 조선 천주교 창설의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1777년 이래 주어사, 천진암에서 열린 수사학(洙泗學·유학)적 분위기의 강학을 그리스도교의 진리 탐구와 실천적 분위기로 바꿨고, 중국으로 가는 이승훈에게 천주교를 소개해 영세를 받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1784년에는 중국에서 돌아온 이승훈에게서 천주실의를 비롯한 천주교 자료를 넘겨받고 수표교 부근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복음 전파에 나선다.
중인 계층뿐 아니라 정약전·약용 형제, 권철신·일신 형제를 비롯한 양반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김 교수는 "이벽의 저서를 보면 유교적인 내용 위에 천주교 고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천주교의 말씀을 도(道)로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고 설명한다.
이벽의 '성교요지(聖敎要旨)'에는 『눈물 흘리며 무서운 근심이 뒤따르리니 / 아침마다 익히고 열흘마다 물으며 / 육신이 썩는 날이 가까워 옴을 두려워하라』(47절)는 표현도 나온다.
유교에서 말하는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아깝지 않다'와 일맥상통한다.
서종태 전주대 교수(언어문화학)는 "이벽의 수표교 집터는 천주교뿐 아니라 한국사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천주교를 학문이 아닌 신앙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최초 세례를 열고 신앙공동체를 탄생시키고 선교를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벽은 자신의 집에서 천주교 전파를 막는 유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여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많은 지인과 호사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호학파의 소장학자를 대표하는 이가환과 사흘 밤낮에 걸친 토론에서 두손 들게 만들었고, 이어 찾아온 이기양도 꼼짝 못하게 했다고 한다.
서 교수는 "여러 문헌을 분석할 때 이벽의 집은 수표교길 서쪽의 서남쪽 끝자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청계천 북변에 세워진 집터 표지석을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 신앙공동체가 탄생한 것을 기념해 2011년 8월 당시 교구장이던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지금 자리에 표지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