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천주교 시국선언, 박근혜정부 ‘저온화상’

"/" 2013. 9. 6. 22:06

천주교 시국선언, 박근혜정부 ‘저온화상’

2013-09-05 오후 1:33:41 게재

전국 15개 교구서 '국정원 규탄' 성명·미사 … 여권 설득에도 사제들 '요지부동'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규탄하는 천주교의 잇단 시국선언에 박근혜정부가 '저온화상'을 입고 있다. 저온화상은 낮은 온도라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7월 25일 부산교구에서 시작된 시국선언이 4일 의정부교구까지 이어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끌지는 않았지만 박근혜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의정부교구 사제 157명은 지난 4일 저녁 시국미사를 열고 "지난 몇 년 동안 자본과 권력의 우상을 섬기던 불통의 정권은 국민을 기만하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급기야 지난해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과 이를 방조하고 이용한 정치세력은 민주주의 자체를 질식시켜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국정원과 새누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의정부교구를 마지막으로 한국 천주교 16개 교구 중에서 군종교구를 제외한 15개 교구 모두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보수성향의 대구대교구가 정치상황에 대해 시국선언을 내놓은 것은 100년 만에 처음이었다. 교구차원의 시국선언을 시작한 부산대교구의 경우에도 26년만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시국선언은 임의단체 성격이 강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아니라 주교회의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시국선언 참여자도 사제 2000여명에 수도자 5500여명으로 상당한 규모다. 전체 교구사제 4000여명, 수도자 1만1700여명 중의 절반 가량이 시국선언에 동참한 셈이다. 이에대해 여권 핵심 관계자는 "종단보다는 개별교회 단위로 움직이는 개신교나 신도에 대한 종단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불교와 달리 천주교는 신도들에 대한 사제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며 "박근혜정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 모두 뽀죡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의 관계자는 "여권 고위인사들이 개별적으로 교구 관계자들과 접촉했지만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에 적잖게 당황했다고 하더라"며 "박근혜정부를 이명박정부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다른 새누리당 인사는 "천주교와 대화할 수 있는 비공식루트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방치하다간 저온화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만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